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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aily Incident/My Opinion

방관자가 되어비린 내 자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며...


토요일 아침, 근 한달여 만에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뉴스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내손으로 뽑았고 또 나와 많은 부분 생각하는것이 같았기에 너무도 좋아했고 존경했으며 믿었던 전 대통령, 아니 인간 노무현의 죽음에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도 가벼운 담소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까지 되었을까...
무엇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 갔을까...
나는 도데체 뭘 하고 있었던 걸까..등등..
이야기는 무거워 질 수밖에 없었고 이성적인 판단 보다는 격한 감정에서 오는 공허함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야구장 관람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서려는데, 동생이 이런날 봉하마을로 가지는 못할 망정 무슨 야구장이냐며, 방관자라던 오빠는 여전히 비겁하다며 핀잔을 준다.
맞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에 나는 철저히 방관자의 길을 걸었다.
상당 부분 생각이 비슷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믿었기에 직접적인 정치적 견해 보다는 제 3자적 시각으로 모든 상황을 실증주의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했었다.
어쩌면 이런 부분이 동생에게는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는 모습이 비겁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항상 동생이 내게 말하는게, 감정을 배제한 제 3자적 관점이나, 실증주의적인 사고 등은 감정이 있는 인간에게 감정을 제거하는 고문과 같고 창조적인 사고를 방해한다고 말한다.
예전 같았으면 동생이랑 즐겁게 토론했을 이야기 인데 왠지 모르게 이날은 마음이 너무 무겁고 내 자신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집을 뒤로 하고 친구들과 만나 야구장을 향했다.
야구경기 관람 보다도 주변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했다.
그런데 주변 상황은 너무도 무심했다.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안돼서 일까, 아니면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이여서 일까...
주변 일상은 변화가 없었다.
야구장에서의 모습도 마찬가지 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로 말은 안하지만 일상의 모습이나 말에서는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표정에서만큼은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나도 친구들에게 전 대통령의 죽음을 쉽게 물어보기 힘들었다.






야구장내에서도 전광판이나 방송을 통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을 전하며 엠프 및 치어리더의 응원을 하지 않고 단체응원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전달 되었다.
그리고 야구장 곳곳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알리는 00일보의 호외가 널려 있었다.
사람들 마다 손에 호외를 들고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주변사람들에게 대통령 서거에 관해 물어보려 했으나 이야기를 꺼내도 친구들은 쉽게 말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차피 비슷한 생각을 하는데 굳이 그런걸 물어볼 필요가 있냐며 말을 아낀다.
나는 더 말을 꺼내지도 못했고 더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호외를 보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서거에 관련해서 이야기 하지 않았다.
알고는 있지만, 왠지 모를 암묵적인 합의였을까...
어차피 똑같은 생각을 할텐데 굳이 말로 해서 뭘 하겠냐는 듯...




우리 일행들은 선수들에게는 좀 미안하긴 했지만, 야구경기 중간에 나와 버렸다.
게임이 지고 있어서라기 보다는 왠지 모를 공허함 때문 이랄까...
일행 모두 말은 안했지만 분위기는 그러했다.
그리고 그렇게 야구장을 나서는 사람들이 우리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들은 치어리더가 나오지 않은 것이나 지고 있는 게임에 흥미를 잃은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착각 이라기에는 이들의 표정이 너무도 예전과는 달랐다.

친구들과 나는 목포로 돌아왔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밀린 일을 처리하는 대신 컴퓨터를 키고 뉴스를 검색했다.
관련 메이저의 뉴스 및 기타 개인 블로그의 내용들 까지 빠짐없이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이곳 지방에서 생각했던 거 보다 상황은 더 심각해 보였다.
전 대통령의 서거 앞에서도 사람들의 반목과 갈등은 여전했다.
특히나 봉화마을의 주변이나 서울 광화문의 상황은 정말 안좋아 보였다.
작년 촛불 집회때 만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 만큼은 어디든지 뛰쳐 나가고 싶었다.
지켜만 보는 방관자로 남기 보다는 현장에서 목 놓아 울고 싶어졌다.
어쩌면 조용히 침묵하는 나같은 방관자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렇게 가버린건 아닌지 괜한 자책감 마저 들었다.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은데 전혀 손에 잡히지는 않았다.
이럴줄 알았으면 당장 봉하마을로 달려갈걸 하는 진한 아쉬움만 남는다.
생각은 하지만 현실에 너무 안주한 탓인지 행동으로 옮겨지지 못한다.
봉하마을로 향하는 조문객들의 소식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내 자신이 부끄러워져만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방관자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나 스스로 생각한게 있었다.
"이제 세상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변했다."
"집단보다는 개인이 더 큰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제는 개인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고 있다."
"나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의 현실 이라면 어느정도 안주하며 살 수 있다."
"크게 떠들며 살기 보다는 조용히 관망하며 살겠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고 내가 하고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이들은 세상에 많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이때의 다짐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국민장으로 치러 진다는데, 꼭 한번쯤은 기회를 내서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