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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Daily Incident/My Opinion

08.06.20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 고릴라의 보는 라디오 에서...그리고 미디어의 발전..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
근 10여년 동안 듣고 있는 라디오 방송이다..
며칠 전, 자주 듣던 인터넷 라디오 방송 고릴라에서 보는 라디오를 보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을 생방송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보여주는 것이 있어 왔다.
라디오 방송이라고 해서 듣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스튜디오 현장을 화면을 통하여 직접 보는 방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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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의 간판 DJ 지영이 누님....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보는 라디오"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전에는 말로만 들어왔었다...

그런데 "보는라디오" 를 보고 "이쁘신 지영이 누님!!" 을 본다는것 보다 더 먼저 생각나는것이 바로 미디어의 변화와 적응 이었다...
중국 제지술의 서양 전파는 종교혁명을 비롯하여 많은 혁신을 야기시켰고, 지식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신문이라는 미디어로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이후에 이 미디어는 라디오, TV, 인터넷 등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미디어가 나올때 마다 그 이전시대의 미디어는 그만큼 더 주목받기가 힘들어 진다..
물론 한때 이전시대의 미디어, 즉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에는 신문, TV가 등장했을 때에는 신문과 라디오등이 사장되거나 쇠퇴할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미디어가 발전한다고 해서 그 이전시대의 미디어가 없어지는게 아니라 다만 미디어를 배분하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대신 한정된 시장에서 분배가 되는 만큼 그 이전에 차지앴던 영역은 축소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보는 라디오"는 개인적으로 라디오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적응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자의 선형성, 즉 낱말을 논리적으로 배열해야만 하는 합리주의적 성격의 미디어와는 달리 라디오나 TV는 전자적 시청각의 공간으로 좀더 유연하게 대중에 접근이 쉽다는 점이다..
즉, 신문보다는 라디오가, 라디오 보다는 TV가, TV 보다는 쌍방향의 데이터 전송이 가능한 인터넷이 좀 더 발전된 미디어로 대중의 접근성이 점점더 좋아진다는 점이다.

물론 모든 구 미디어들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있으며 "보는 라디오"또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구 미디어가 신 미디어에 경쟁하기 위해 "적응"하는 것이다..



요즘들어 조중동에 대한 날선 비판이 많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 이지만...아직 신문과 같은 미디어에서 현재의 신 미디어에 적응하는것이 다소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기껏 해봐야 인터넷에서 기사겁색이 전부이다..
물론 이 차이도 예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겠지만.....
어쩌면 문자의 선형성으로 인한 한계 일지도 모르곘다.
신문이, 좀 더 혁신적으로 신 미디어에 직응하지 않는다면, 예전의 영광은 찾기 힘들것이다..
물론 지금 가지고 있는 영역까지 뺏기지는 않겠지만....
어차피 미디어는 분배되기 때문에 신문의 영역도 없어지지 않고 그 영역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